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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고 기회를 잡는 방법

라이프데이 2023. 9. 17. 03:50

 

실연의 아픔이 참기 힘든 이유는 사랑에 빠질 때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직 헤어진 연인만 생각난다. 종일 그 생각만 하고 오지 않는 전화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 사람은 더 이상 곁에 없는데 여전히 매달리고 자격 없는 집착만 한다. 마치 비극 속 주인공처럼 내내 괴로워하다가 이내 분노에 휩싸여 복수를 꿈꾼다. 지나친 애착이 증오로 변하는 순간이다.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고 기회를 잡는 방법

 

사랑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별의 슬픔은 단순이 외로움만 남기는 게 아니라 더 깊은 상처로 이어진다. 사랑했던 상대에게 내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건, 날개가 다 자라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성인 나비나 제비와 같다. 실연을 겪은 사람은 구름 위를 걷다가 다시 현실의 땅바닥에 내려오게 된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연의 상처는 죽음과 같지 않을까? 그렇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그전에도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던 그 사람에게 나는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다. 너무나 빨리 내가 잊히고 지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방파제 기술은 꼭 필요하다. 내 안에 방파제가 있다면 실연을 겪여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다.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기력을 회복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여러 방법으로 실연의 상처를 극복해 간다. 글쓰기에 몰두하기도 하고, 열렬히 사랑했던 상대에게 행복을 의지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기도 한다. 가고 싶었던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외모, 동네 혹은 생활 패턴을 바꿔보기도 한다. 더는 자기 자신을 나락으로 몰고 가지 않기 위해 나름의 건강한 방식을 기른다.

 

중요한 것은 남이 나에게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다. 고통을 극복하고 실연한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느냐다. 상처를 아물게 할 수는 없어도 상처에서 피기 너무 흐르지 않게 할 수는 있다. 뱃멀미에 치료약이 있듯이 실연의 상처에도 치료약은 있다. 그것은 거친 물결이 와도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중심이다. 우리가 상실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게 막아주는 방패와 같은 방파제다. “소용없어. 난 안 쓰러져.”

 

사랑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바다뿐이다. 바다도 사랑처럼 위로가 되면서 절망이 된다. 바다도 사랑처럼 기쁨을 주면서 모욕감을 안겨준다. 사랑은 무엇인가를 주면서도 그만큼 빼앗아간다. 사랑은 죽는다. 아니면 사랑 때문에 우리는 죽는다. 마치 우리의 목숨을 앗아가는 파도처럼 말이다. 사랑은 등대이자 암초, 불꽃이자 칼날이다. 사랑은 한없이 주다가도 거칠게 모든 것을 앗아간다. 아무리 아름답고 단단한 사랑이라고 해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과 바다의 존재는 기적 같지만, 그것이 주는 타격은 넘치는 환희만큼이나 지독하고 아프다.

 

실연으로 아파할 때 곁에서 위로해 주는 사람들은 “하나를 잃으면 열 개를 얻는다고 하더라 ‘, ”그 사람에게 너는 과분한 상대였어 “라고 말하지만 상처만 키울 뿐이다. 그런 말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진실은 이렇다. 사랑은 길들일 수 없으면서도 연약하다. 사랑은 태어나 활짝 피었다가 퍼석하게 시들고 끝내 사라진다. 삶에서 실연의 상처만큼 위로가 되지 않는 상처가 있을까? (로랑스 드빌레리 지음 모든 삶은 흐른다에서)

 

 

내가 싫어져서 권태기가 와서 원치 않는 이별로 실연을 아픔을 겪을 때 모든 드라마의 슬픈 장면이 나의 이야기고 슬픔이고 모든 노래가 나를 위한 가사이고 눈물이고 사하라 사막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것처럼 온갖 슬픔은 내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극복하고자 술에 의지하게 되고 전화를 하고 또 싸우고 쳇바퀴처럼 반복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몇 번이고 극복해야지 이러면 안 된다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해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정확히는 6개월 정도를 형편없이 보내고 또 보내면서 심리학을 공부하자고 생각하여 책과 유튜브를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정말 우연히 유튜브로 심리학을 찾아서 보던 중 인터넷 글쓰기를 보게 되었고 거기에 “다 알려줘도 아무도 안 해요”라는 글귀를 보고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기 시작하여 하루가 넘게 밤을 꼬박 새우며 보았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남들과 다르게 술자리 하고 놀고 하는 시간에 1년만 공부를 해보자고 생각하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짐만으로 극복한다면 실연은 아픔이 아니고 살짝 부딪힌 정도였겠지요. 노트에 적고 배우고 하루에 매일 할 일 점검표를 만들어 체크한 게 벌써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고 기회를 잡는 방법

 

하루를 산다는 것은 단순히 하루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오늘뿐만 아니라 미래의 오늘까지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내가 아무것도 안 해 놓았다면 미래의 오늘 역시 똑같은 하루를 보낼 테지만

오늘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냈다면 그 무언가는 미래의 오늘에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매일 이 글귀를 출근 전과 퇴근해서 낭송합니다.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는 글귀인 것 같습니다.

그래 지금 내가 남들과 다르게 무언가 발전적인 일을 한다면 미래에 언제가 될지 1년이 될지 5년 10년이 될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오늘과는 다를 것이라고 굳게 믿고 또 믿습니다.

 

이렇게 책과 글쓰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달라진 게 있었습니다. 우선 술을 마시는 걸 확 줄였고 참고로 일주일에 4~5회는 마셨는데 1~2회로 주량도 반 이하로 마시게 됐고 전화도 현재는 거의 안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노래를 들으면서 우는 것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때는 내 노래고 내 가사였던 음악이 지금은 그래 이런 가사였지 이런 음악이었구나 하면서 추억으로 변하는 중입니다.

 

술을 확 줄이고 전화도 거의 안 하고 모든 것이 변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퇴근 후에 휴일에 글을 쓸려고 하다 보니 술을 마시게 되면 술기운으로 글쓰기를 할 수가 없었고 또 퇴근 후 2~3시간 여기에 집중하다 보니 솔직히 술 마실 시간도 전화할 시간도 안 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술을 마실 때면 어쩌다 한 번은 전화를 했었는데 a4용지에 내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었습니다.

 

000 절대!!! 전화하지 마 특히 술 마셨을 때

너 잊지 않았겠지 네가 다시 돌아가도 너는 똑같아

너와 사랑보다는 술과 남자를 선택하고 돈을 선택해

네가 전화하는 순간 수개월의 고통을 아픔을 상처를 치유하던 그 시간들이 물거품이 되는 거야

이겨내!!! 다 왔잖아 조금만 힘을 내

네가 지금 원하는 게 뭐야? 간절히 원하는 것 있잖아

지금 잘하고 있어 술도 적게 마시고 아픈 몸 낫기 위해 스트레칭 열심히 하고 돈공부도 밤도 새 가면서 하고 있잖아

천생연분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좋은 기억만 갖고 가자 많은 시간 너에게 사랑도 많이 주고 마지막에 큰 상처도 준 사람...

순간순간 이겨내고 올해 안에 퇴사를 목표로 하자

너의 꿈을 이뤄봐! 너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아니할 수 있어야 하고 다가오는 인생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워봐!

내가 진심으로 열렬하게 응원 또 응원할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보고 있네요. 정말 술 마시고 전화하고 싶을 때 이걸 보면서 나에게 사정도 하고 울기도 하고 해서 안 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울컥합니다. 책상 앞 옆으로 뭔가 많이 붙여 놨습니다. 바둥거리면서 무언가라도 하려고 했습니다. 마음은 아주 편합니다. 실연을 극복하면서 미래까지 얻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막 극복해야지 하면서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한 것은 아닌데 절실하게 실연보다 다가올 미래가 실연보다는 큰 이유로 자연 치유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책상에 앉아서 볼 수 있는 곳에는 글귀를 다 붙여놔서 일부러 안 찾아도 자연스럽게 다 보고 일일점검표도 아직은 X표도 많지만 그래도 O가 더 많아서 기분도 좋고 작은 성취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1년이 다 되어가면서 지금 생각하면 그때 실연의 아픔이 약간 시시하기도 하구나 하고 생각도 해 봅니다.

특히 돈을 많이 안 쓰고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 책값, 유튜브 유료 강의료 조금, 기타 등등 실연의 아픔이라는 큰 고통에 비하면 너무나 적다고 생각합니다. 술자리 줄이면 술값도 절약되고 놀러도 안 가니 여행비도 절약되고 등등 혜택도 많이 있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기회나 희망 없이 사는 것이다. (서진규)

- 숨을 들이마셔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라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 화가 났을 때 숨을 깊게 들이마셔라 그리고 잠깐동안 생각해라

- 네가 자는 동안 돈을 만드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너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워런버핏)

-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더 강력하다. 모두가 성공을 원하지만 결국 극소수만 원하는 것을 얻는 이유 중 핵심은 바로 실천의 유무이다.

-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긍정을 갖는다 인간관계에서 성공하려면 내 안을 절대긍정으로 가득 채워야 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다 또한 성공도 없다.

- 시간을 낭비한 죄. (영화 빠삐용)

 

 

재판관: “네 죄명을 알겠나?”

빠삐용: “난 결백합니다.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증거도 없이 뒤집에 씌운 겁니다”

재판관: “맞다 넌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빠삐용: “내 죄가 뭡니까?”

재판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범죄 널 기소한다 인생(시간)을 낭비한 죄로”

빠삐용: “유죄... 유죄... 유죄...” (영화 빠삐용에서 꿈에서 재판관과 대면하는 장면)

 

 

시간(인생)을 낭비한 죄라면 저도 확실히 유죄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 할 일 하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거의 누구나 다 하는 일이겠지요.

그 외에 다른 것을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이 생각해 보니 많이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서 자기 계발도 게을리했고 남을 도울 수 있는데도 돕지 않았고 효도할 수 있는데 효도를 안 하고...

모두가 똑같은 공평한 시간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최소한의 일상생활만 하고 어떤 사람은 무언가를 해내서 자신도 남도 도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부지런해서 효도도 하고 결과는 극과 극의 차이가 되어버리는 시간(인생)을 낭비했으니 얼마나 큰 죄이겠습니까.

 

반대로 생각하면 모두가 공평한 시간을 최선을 다해 활용한다면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고 연인으로서 부부로서 가장으로서 자식으로서 이웃으로서 마땅한 도리도 그 외에도 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돈은 최악을 면하게 해 주고 돈이 최선의 선택이 되면 안 된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완전히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맞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실연의 극복은 마음먹기 나름이겠지만 또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내가 극복하기로 선택했다면 그 무언가가 실연보다 미래에 더 큰 무언가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극복될 것이고 지금 겪고 있는 실연보다 그 무언가가 더 작은 것이라면 중도에 아니면 시작하지도 못하고 폐인이 될 수도 있고 자연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극복될 수도 있고 극단적인 상황으로도 갈 수 있는 것이 실연의 아픔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발버둥도 치면서 책도 보면서 운동도 하고 글쓰기도 틈틈이 하는 루틴을 100%는 아니지만 점검표를 보니 60%는 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을 낭비한 죄가 정말 유죄라면 피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오늘 무언가를 열심히 해냈다면 미래에 무언가가 어떻게든 존재한다면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극단적인 행동도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실연을 극복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둘 다 정말 어렵다면 극복하는 것을 선택하여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포기할 때까지 만큼은 이룬 것이고 못 이룬 것은 실패창고에 쌓여있어 나중에는 실패창고에 쌓여있는 것 덕분에 더 쉬울 수도 있다고 합니다.

 

실연의 극복이 되어가면서 생각나는 것은 이제는 실연의 대상이 되었던 모든 것들을 다 지우고 싶습니다. 어떤 영화에서처럼 약 1알로 부분의 기억이 지워지는 것처럼 좋은 기억도 아픈 기억도 다 지우고 더 이상 부질없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기억으로 인해서 또다시 고통과 아픔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지나고 보니 나에게는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도 누구에게 상담했더라면 말로 표현했더라면 덜 힘들고 덜 어렵거나 빨리 해결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을 때는 내 주위를 생각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다가가기도 힘들고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힘든가 봅니다.

 

아마도 저는 책과 영상으로 상담함으로써 극복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1년이 다된 실연을 극복한 지금 시점이기에 실연 당시의 상황이 많이 약해지고, 가감되고, 감정표현이 많이 절제되었리라 생각됩니다. 누구든 극복하여 지나고 나면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는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아래의 글을 소개하면서 모두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여 행복한 상태에서 다음 사랑도 잘 준비하셨으면 바라고 또 바라겠습니다.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고 기회를 잡는 방법

 

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어떤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서 시야가 좁아집니다. 이를 ‘심리적 시야협착’이라고 합니다. 이것에 빠지면 주변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담을 받거나 책을 읽으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는 당연한 생각조차 잘하지 못합니다.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고민거리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버리는 거죠. 그렇게 되면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같은 건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아니 타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심리적 시야협착에 빠지면 ‘아, 나는 결국 죽는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극단적인 사고에 빠져서 자살하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실제로 자살 시도자 3명 중 2명은 누구와도 상담하지 않고 갑자기 자살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상담불가 증후군’을 방치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힘들 때는 어떻게 해서든 상담받을 용기를 내어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아야 합니다.

 

실연으로 생긴 마음의 상처는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치유됩니다. 하지만 실연을 당한 사람 중 상당수가 ‘감히 나를 차다니, 참을 수 없어’, ‘바람을 피우다니 나쁜 놈!’, ‘정말 그 인간은 최악이었어!’라고 몇 번이고 슬픔과 분노를 곱씹으면서 기억을 강화합니다. 이런 과도한 아웃풋만 자제해도 2~3개월이면 잊힐 실연의 상처가 1~2년 동안이나 지속됩니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는 조용히 기다리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경과를 관찰만 하면 됩니다. 시간의 경과를 활용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고민 대처법입니다. (가바사와 시온의 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 중에서)

 

 

이별 후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이 흔히 빠지는 착각이 있다. 이별 후 고통이 크고 오래갈수록 그만큼 자신의 사랑이 깊었고 찬란했다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곧잘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거나 회사에 출근을 못 하고, 헤어진 연인의 SNS를 들여다보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그런 후 수척하고 푸석해진 얼굴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걸 보니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긴 했나 봐’라며 자기 위안을 한다. 자신을 로맨티시스트나 순정파로 여기기도 하고 드라마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도 빠진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별의 아픔이 크고 길다고 해서 그것이 뜨겁게 사랑한 증거는 아니다. 정상 범주를 넘어설 정도로 아프다는 건 마음이 건강하지 않다는 뜻일 뿐이다. 회복탄력성이 떨어진다는 뜻이고, 마음을 지켜줄 안전지대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제대로 사랑한 사람이라면 사랑받은 힘으로 인해 아마 회복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별 후에도 최선을 다해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한다. 괜찮은데도 굳이 아픈 척할 필요는 없다. 건강하게 지내고 행복을 되찾았다고 누군가 당신을 비난한다면, 그건 비난한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심한 금단 증상은 대개 3일에서 2주 사이에 사라진다. 이보다 짧을 수도 있고 더 오래갈 수도 있다. 사람마다 겪는 강도도, 기간도 다르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고통이 이어지거나 깊은 슬픔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가길 권한다. 그건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학적인 문제일 수 있다.

 

가까운 동안 잘해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좋을 때 좋은 모습을 보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멀어질 때 하는 행동도 그 사람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멀어질 때 그 사람의 본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아닐까. 평소 무척 잘해주던 사람이 갑자기 잠적했다면, 잠적하는 것도 그 사람 스타일이고 연락을 두절한 것도 그 사람의 일부다. 콩깍지가 씌워져 있을 때 생기는 일은 물론이고 애정이 식거나 이별할 때의 모습까지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고 기회를 잡는 방법

 

진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을 때도, 싸울 때도, 헤어진 후에도 적절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상대를 위해 참을 줄 알고,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관계를 마무리하는 것이 진짜 사랑일 것이다.

아름다운 사랑인지 아닌지는 이별할 때, 그러니까 멀어질 때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잘 헤어지는 것도 사랑이 할 일이다.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이다. 이별도 사랑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이별을 잘해야 사랑도 가치가 있고, 다음 사랑도 잘 준비할 수 있다. 최대한 덜 아프게, 최대한 매너 있게 이별하자.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함께한 시간을 존중하자. 이별의 방식이 그동안 나눈 사랑의 질을 증명한다. (윤홍균의 사랑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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